영원한 자유 3장 불생불멸의 세계 ③
3. 삼천대천세계
이제는 이 불생불멸의 공간적 범위는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봅시다.몇 해 전에 어느 대학의 총장으로 있는 분이 와서 묻기를, "불교를 여러 해 동안 믿어왔는데 부처님이 이 우주를 어느 정도 크게 보셨는지좀 말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삼천대천세계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그것도 모르느냐"고 웃으면서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삼천대천세계'라고 말은 많이 하지만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범위 안에서는 일월(日月)이 비치는 우주를 한 세계라고 합니다. 흔히 한 일월이 비치는 우주가하나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 우주가 천(千)이 모여서 소천세계(小千世界)가 되고, 그 소천세계가 또 천이 모여서 중천세계(中千世界)가 되고, 중천세계가 다시 천이 모여서 대천세계(大千世界)가 되며, 대천세계를 세번 곱한 것이 삼천대천세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일종의 표현방식일 뿐이고실지 내용은 백억세계 혹은 백억일월인 것입니다. 또 이 백억세계, 백억일월을 한 불찰(佛刹)이라고 하고 이런 불찰이 미진수(微盡數)로 많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크기입니다. 이런 크기는 혜안(蕙眼)이 열리지 않고는 누구도 쉽게 납득할 수없는 세계입니다.
그런데 요즘 천문학에서 이 사실이 실증되고 있습니다. 1955년에 미국에서 파르마 산(山)에 200인치나 되는 굉장히 큰 망원경을 처음으로완성하여 설치하였습니다. 200인치라고 하면 직경이 5미터나 됩니다.그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하면 10억 광년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망원경을 통하여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우주라는 것 밖에도 무한한 우주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단순히 별 하나뿐인단일체가 아니라 수천, 수만 개의 별이 모인 집단 우주가 무한히 많은숫자로 존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사실은 사진에도 나타나고신문에도 보도되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무한한 우주 집단이 대략 40억개 내지 50억개쯤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부처님이 말씀하신 백억세계라는 것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과학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직 과학 기술이 부족해서 10억 광년밖에 볼 수 없지만 더 발달하면 100억 광년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 무한한 우주 집단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부처님께서 가장 작게 보신 것으로는 '일적수구억충(一適水九億蟲)'이라고 하신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물방울 한 개에 9억개나 되는 많은 벌레가 있다는 것입니다. 최신의 현미경으로도아직 물방울 한개에서 벌레를 9억개까지는 볼 수 없지만, 그토록 조그만 세계에 그렇게 많은 생명이 살고 있다는 것도 이즈음에 와서 점차증명되고 있음은 사실입니다.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혜안을 가지고 상상할 수 없는 무한한 우주 공간을 보셨습니다. 흔히 말하는 상주법계, 진여법계라고 하는 것도 중생들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불생불멸을 내용으로 하는그 법계라는 세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한에서 무한으로 이어지는, 참으로 무한한 세계입니다.
4. 물심불이(物心不二)의 세계
그러면 너르디 너르고 변함이 없는 광대무변한 우주가 있으며 그 내용은 또한 불생불멸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물질로된 것인지 정신으로된 것인지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흔히 불교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여 불교가 유심론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라고하는 것은 정신과 물질을 떠난, 곧 양변-물질과 정신-을 떠나서 양변이 융합한 중도적인 유심을 말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유물론이나 유심론이 결코 아닙니다. '일체유심조'라고하지만, 그것은 철학에서 흔히 말하는 유심론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것은 변견(邊見)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교는 변견으로서는 설 수가 없습니다. 완전한 중도적 입장에서라야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보면 유심(唯心)도 아니고 유물(唯物)도아닙니다. 유심도 아니어서 유심과 유물을 완전히 부정하면서 동시에유심과 유물이통하는 세계입니다. 곧 물심불이(物心不二)인 것입니다.유심도 아니고 유물도 아니면, 결국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가서는 서로서로 융합해서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심적으로도 증명이 되어야 하고, 유물적으로도 증명이 되어야 합니다. 이 두가지로 증명이안 되면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생물학에서는 인간의 육체나 또는 동물, 식물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습니다. 이들은 아주 미세한 세포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학계에서 이들 세포를 연구한 결과, 동물의 세포나 식물의 세포가 똑같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또 근래에 와서 어느 세포나 각 세포 가운데에는 핵산이라는 것이 들어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영문 약자로 흔히 '디엔에이 DNA'라고 하는것입니다. 이 핵산은 순전히 정신적인 역할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이것이 자동적으로 모든 것을 기억해서 서로서로 연락하고 명령을 전달하고 신경을 지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핵산은 결코 신경계통의기관은 아닙니다. 각 세포 가운데에는 세포핵이 있는데, 핵산은 그 세포핵 가운데에존재하여 기억력과 활동력을 가진 정신체라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조금 더 연구를 깊이 한 생물학자들은 식물과 동물의 세포는 모두 정신 작용을 하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정신 활동을떠난 물체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물학 연구도물질과 정신이 실지로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주고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움직이지도 않고 그나마 생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진 광물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광물이 동물, 식물처럼 성장하지도않으니 아예 죽어 있는 무생물로 취급한다든지 운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대인의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물질의 근본 질량으로 소립자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늘 스핀 Spin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스핀 운동이란 모든 소립자가 일정하게 타원형을 그리며 활동하고있는 성질을 말합니다. 어떤 소립자든지 늘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다만 인간의 눈으로는 그것을 볼 수 없으므로 운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보일 따름이지, 이 세상에서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실제에 있어서 어떤 광물이든지 또는 무생물이든지 그것들은 모두 활동을하고 있으며 살아 있습니다. 어떤 물체든지 죽어 있거나 활동하지 않는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물리학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사실 입니다.
어떤 입자든지 스핀운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물질에서 그치는 것이지 정신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 이론물리학에서는 "소립자도 자유의사를 갖고 있다"고들 많이 주장합니다.자유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결국 정신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동, 식물을 이루고 있는 각 세포마다 그 속의 세포핵에 핵산이 있어서 정신활동을 하고 있듯이, 광물이나 무생물도 그것을 이루고 있는각 입자 안에서는 스핀운동을 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자유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불생불멸을 말하면서 이렇게 현대물리학을 도입하여 우리가일상에서 인식하고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가 아니라 시간을 백억분의일 초로 나누고 공간을 다시 백억분의 일 밀리미터로 나누어서 극 미세한 상황까지 설정하여 이야기를 펼친것은, 결국 동물이든 식물이든 광물이든 그 모든 것은 물질이라고도 할 수 없고 정신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그와 동시에 그것은 또 물질이라고도 할 수 있고 정신이라고도할 수 있음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바로 양변(兩邊)을떠나고 또 양변을 포함하는 불교의 중도공식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은 발달을 거듭하면서 자꾸 불교 쪽으로 가깝게 오고 있습니다.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불교는 과학이 발달될수록 그 내세우는 바가 좀더 확실히 증명이 되고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높이찬탄합니다.
이렇게 해서 3,000년 전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현대과학의 이론으로 입증됨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부처님 말씀은 누구든지 의심할래야의심할 수 없는 진리의 세계이기에 영원불변하는 것입니다. 설령 원자탄이 천 개, 만 개의 우주를 다 부순다 하더라도 불교의 중도사상, 연기사상의 원리는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5. 질문과 답
물음 :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믿는 자는 융성하고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여 절대자인 창조주가 화복(禍福)을 정한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업(業)에 따라서 착한 일을 하면 행복하게 되고 악한 일을 하면 불행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해가 어렵습니다.
답 : 예수교에서 주장하는 것은 만든 이도 하나님이고 따라서 구원도그에게 매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누가 만든 사람이따로 없고 누가 따로 구원해 주지 않습니다. 순전히 자아(自我) 본위입니다. 예수교는 철두철미 남을 의지하는 것이니 두 관점이 정반대입니다. 요즘의 과학적 증명에 의하면 남이 만들어 주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말했듯이 예수교에서도 자체 전환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본시 주장하는 것은 우주 이대로가 상주불멸이고 인간 이대로가 절대자라는 것입니다. 현실 이대로가 절대이며, 또 사람이고 짐승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하나님 아닌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결국 사람 사람이 모두 금덩어리 아님이 없는데 자기가 착각해서 금덩어리를 똥덩이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중생(衆生)이라는 말은 이것을가리키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금덩이인 줄 모르는 것이니수행을 하여 본래의 눈을 뜨고 보면, 본시 금덩이인 줄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모두 진금(眞金)이고 모두가 부처님 세계이고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교에서는 '구원'한다고 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준다는식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구원이 아닙니다. 자기 개발이고, 자기복귀(復歸)입니다. 자기의 본래 모습이 부처님인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선종(禪宗)의 조사 스님네들이 항상하는 말이 그렇고 또 내가 항상하는 말이 이것입니다. 석가도 믿지 말고, 달마도 믿지 말고, 지금 말하는 성철이도 믿지 말라. 오직 자기를 바로보고, 자기 능력을 바로 발휘시켜라. 이것이 불교의 근본입니다. 그럼, 어째서 부처님은 극락세계등의 의타(依他)를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방편설(方便說)입니다. 자아(自我) 본위를 모르는 사람을 깨우치기 위한 방편이지 참 가르침은 아닙니다.
물음 : 업(業)의 변화에 의해서 귀하게도 되고 천하게도 되는 것입니까?
답 : 그렇지요.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것입니다. 햇빛 속에 똑바로 나서면 그림자도 바르게 되고 몸을 구부리면 그림자도 구부러지는것입니다. 바른 업을 지으면 모든 생활이 바르게 되고 굽은 업을 지으면 모든 생활이 굽어집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습니까? 절대로 타살(他殺)은 없다, 전부 다 자살(自殺)이라고.
물음 : 불교의 윤리에서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은 어떻게 구별됩니까?
답 : 남을 도우는 것, 남에게 이로운 것은 선(善)이라 하고, 남을 해치는 것,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악(惡)이라 합니다. 그러나 불교의진정한 의미에서의 선이란 선과 악을 완전히 버리고 또 선과 악이 융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중도(中道)의 세계를 말합니다. 선과 악이 대립되어 있는 것은 진정한 선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쪽에 치우친 변견(邊見)입니다. 보살계(戒)를 받을 때에 "선도 버리고 악도 버려라. 이렇게 하는 것이 보살이다"고 말합니다. 상대적인 변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럼 선도 버리고 악도 버리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선도 버리고 악도 버리는 여기에 참 선이 나오는 것입니다.
물음 : 도솔천과 극락세계(極樂世界)는 어떤 것입니까?
답 : 도솔천이라고 하는 것은 외계(外界)의 천상(天上)에 있습니다.그러나 꼭 말씀 그대로 받아들일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 당시에 이미도솔천이니 33천(三十三天)이니 하는 사상이 있었고 중생을 교화하기위한 방편(方便)으로 쓴 것입니다.
그러나 극락세계는 그 성질이 다릅니다. 이것은 본시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아미타불의 원력(願力)으로써 극락세계를 만들었습니다. 흡사히 하나님이 하늘이 있으라 하니 하늘이 있다는 식(式)입니다. 아미타불이 원력으로써 만들어 놓은 땅이니 우주창조설과 그 성격이 같은 것입니다.
물음 : 인간의 능력이 무한하고 불교가 완전무결한 것이라면 앞으로과학은 불교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답 : 몇헤 전 불교로 전향한 어느 미국 사람이 서울에 와서 강연한적이 있습니다. 예수교뿐만 아니라 많은 종교가 과학이 발달할수록 퇴색되고 파괴되는데 비해 불교는 더욱 더 그 논리가실증되는 동시에 빛이 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불교는 진리를 바로 보았기 때문에 3천년 뒤에도 그것이 참말인 것이 자꾸 증명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과학이 발달할수록 불교의 진리가 한가지 한가지씩 계속해서 더 증명이 될 따름이요, 불교 이상의 더 나은 진리를 발견할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손오공이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인 줄을 알아야지요.
물음 : 캐논 경이 쓴 [잠재력]에서와 같이 무의식 상태에서 실험하는 그들도 화두 공부를 한 것입니까?
답 : 그들이 화두 공부를 한 것은 아니고또 완전히 제 8 식(識)에도달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실험을 하는 동안에는 무의식 상태에 가깝게 들어간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 상태에 들어갈 것 같으면 그런 능력이 나타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물음 : 윤회설과 인구증가 및 산아제한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답 : 인구가 증가한다는 것 곧 이전에는 인구가 적었는데 지금에는인구가 많다 하니 이것은 영혼이 어떻게 된 것인가? 사람이 반드시 사람으로만 윤회한다면 이것은 문제가 큽니다. 사람만이 사람으로 윤회한다면 인구가 증가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윤회를 하는 데에는 동물과인간의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외계에서 오는 영혼도 있고하여 전체적으로는 증감을 논할 수가 없습니다.
지구에서 인구가 자꾸 팽창해 가니 산아제한을 해서 위기를 면해야겠다고 인위적으로 노력을 하는데 그것 가지고 해결이 안 됩니다. 산아제한한다고 사람이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이 건설적으로 나아가야지 산아제한은 파괴적입니다. 우리나라의 인구가 많아서 먹을 것이없다고 할 지 모르지만, 우리가 노력하고 개척하고 개발하면 아무리 인구가 많아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물음 : 불성(佛性)이란 무엇입니까?
답 : 이것은 불교의 독특한 용어(用語)인데, 부처님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을 불성(佛性)이라 하고, 일체법계(一切法界)를 말할 때는 법성(法性)이라 하는데 일체만법의 본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이 법성을 바로 안 사람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그것은 변동이 없으므로 진여(眞如)라 하기도 하고, 그 내용은 중도(中道)이므로 중도라 하기도 하고, 활동하는 자체는 연기에 따라 움직이므로 연기법(緣起法)이라도 합니다.이들은 모두 같은 내용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희한하고희한하구나, 모든 중생(衆生)이 두루 불성을 갖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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